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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꼬물 [제2화] 컨테이너의 발명과 20세기 미국 주도의 해운 선사의 발달

등록일AUG 16, 2021

[제2화] 컨테이너의 발명과 20세기 미국 주도의 해운 선사의 발달
안녕하세요! 최덕림입니다. 여러분 1화 내용 어떠셨나요? 다들 물류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나 물류 전문가분들이시라 다 아시는 내용이거나 모르시던 내용이라도 빠르게 이해하시리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멋져..!


2편에서는 컨테이너의 발명과 미국 주도의 20세기 해운 물류의 발달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왜 한꺼번에 올리지 2부로 나누어서 올렸냐고요? 요즘 드라마를 잘 안 보시는군요, 요즘 나누는 게 대세입니다. 1시간짜리 내용을 2부로 나누어 중간에 광고도 적당히 삽입하여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대세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적분보다는 미분, 이것이 새로운 수익 창출 모델입니다. 그럼 저희도 1화~ 2화 사이에 배너 광고라도~~?

하핫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제가 머릿속에 든 것은 적은데 말을 많이 해야 하는 운명이라 이런 양념도 가끔 섞게 되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신 안 매운 것으로 섞겠습니다.

후훗


지난번에 어디까지 말씀드렸죠? 철도의 발달과 컨테이너의 발명까지 얘기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컨테이너의 발명에 대해 얘기를 하겠습니다. 아! 여기서 한가지! 발명과 발견의 차이를 잘 아시죠? 잘 모르신다고요? 발견은 원래 세상에 있던 것인데, 처음으로 찾아낸 것이고요, 발명은 원래 세상에 없던 것인데 뚝딱뚝딱해서 만든 것입니다.

자 그럼, 콜럼버스는 서인도를 발명했다 아니면 발견했다. 뭘까요? 정답은?
예 맞습니다. 원래 있는 것을 처음으로 찾아냈으니 “발견”이죠.
예???? 뭐라고요? 서인도라는 것은 착각으로 만든 허구의 대륙이라 원래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이건 “발견” 이 아니라 “발명”이라고요?
에이 참! 오늘 말 많이 꼬이네요. 그럼 질문을 바꾸겠습니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발명했을까요? 발견했을까요? 예. 맞습니다. “발견”입니다.

멋져..!


본론으로 다시 돌아가서 20세기 중반 컨테이너의 “발견” 아니 “발명” 이후 해운 산업의 표준화, 자동화, 대형화, 신속화, 정기선화 등으로 모든 해운 물류산업의 혁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컨테이너의 발명은 아주 우연한 기회에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발명이 그렇듯이 이번에도 작은 아이디어가 세계의 해운 물류계의 역사를 바꾸는 큰 계기가 되었습니다.

현대의 컨테이너선 역사를 논하려면 미국의 1) Sea Land사 와 2) Malcom이라는 사람을 빼서는 안됩니다. 미국은 2차 대전 이후 전후 산업 물자 수송을 위해 트럭 업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가난한 Truck 기사 출신인 Malcom Mclean은 어렵게 Truck 한 대로 회사를 열어 운송 사업을 시작했고, 이 어려운 와중에도 트럭 운송 사업을 확장시켜 나갔습니다. 한국의 물류의 왕이셨던 한진그룹 고(故) 조중훈 회장도 트럭 한 대로 사업을 시작하셨으니, 물류로 성공을 하려면 트럭 한 대로 사업을 출발을 해야 되나 봅니다. Malcom은 Truck 운송의 합리화를 위해 33 Feet Cube철제 용기 (Container)를 개발했는데, 용기 안에 짐을 싣고, 용기 채로 트럭 운송을 하여 Stuffing(컨테이너에 화물을 적입하는 것) / Unstuffing 시간을 많이 줄이는 것을 고안 했습니다. 처음 시작 시, 사람들은 저 무거운 철제 용기로 깡통을 만드는 것이 무모한 시도라고 했지만, 용기(勇氣)를 내어 용기(容器) 사업에 적극 투자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전쟁 후 남은 군용 유조선 한 척을 정부로부터 불하 받게 됩니다. Malcom은 불하 받은 군용 선박인 유조선을 개조하여 Ideal X 호로 명명을 하고, 컨테이너 56개와 Trailer 2개를 싣고 Newark에서 Houston로 1956년 대망의 첫 컨테이너 해상운송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선박을 통한 첫 컨테이너 운송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컨테이너와 함께 Trailer를 다량 선적하려고 하였으나 Space 문제로 컨테이너만 선적을 하고 Trailer는 두 량만 선적을 하였습니다.

아! 그런데 트레일러가 뭔지 물어보셨나요? 음. 일반적으로 샤시를 통칭하는 말로 아시면 쉬울 겁니다. 아! 뭐라고요? 아파트 거실 샤시하고 다른 것이냐고요? 음…………. 그냥 컨테이너를 올려놓고 컨테이너 헤드(컨테이너 전용 차량)로 연결하여 끌고 가기 위한 바퀴 달린 받침대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아래와 같이 생겼죠.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후 1957년에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선 Gateway City 호를 건조하여 New York ~ Texas 구간을 운항하였습니다. 이후 이 컨테이너선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됩니다. 이후 Malcom 은 1960년도에 회사 이름을 “Sea Land Service”로 변경을 하여 세계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 서비스를 하는 선사를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그 유명한 Sea Land 사의 원조입니다. 그리고 1963년도에는 뉴저지 주의 뉴어크항, 엘리자베스 마린 터미널에 컨테이너 전용 시설을 마련했습니다. 대단한 선견 지명을 가진 투자였습니다. Mc Lean은 그동안 사람에 의해 매뉴얼 작업에 의존했던 기존의 작업에서 탈피, 컨테이너를 이용하여 보다 효과적인 작업이 가능해짐에 따라, 기존 화물 처리 비용은 $6 내외지만, 컨테이너 이용 시 약 20 cent 미만의 비용만이 들어, 약 30배 이상의 비용을 절감 효과를 낼 수 있었습니다. 그의 용기 있는 비즈니스 실행 정신이 해운과 육송의 물류 혁명을 가져왔고, 비용 절감의 효과는 결국 소비자들에게 돌아와 지금 저희들이 혜택을 입고 있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이러한 컨테이너 운송 개념이 1967년 이후 베트남 전쟁에도 도입이 되었지만, 당시 회사마다 규격의 통일성 없이 컨테이너 제작을 하여, 호환성이 전혀 없는 컨테이너 운송 시장이 형성되어, 트럭 업자나 선사 간의 업무 효율성은 크게 높지 않았습니다.

이후 1968년 컨테이너 규격이 ISO를 통해 현재 개념의 20 Feet, 40 Feet로 통일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가 1960년도 말이기 때문에 현재적인 의미의 Container 운송 산업은 약 50여 년 정도 되었다고 보시면 될 것입니다.

컨테이너 비즈니스 선두주자인 Sea Land는 1960년대 후반에서 1970년 전반까지 컨테이너 전용선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이전까지 Container 수송에 많은 발전을 가져왔습니다. 그때 만약 우루과이 라운드처럼 국제적으로 저작권에 대한 권리가 인정되었다면 Malcom은 독점으로 Container를 운영하여 훨씬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었을 텐데 조금은 아쉽습니다.

Sea Land 가 처음 사용한 컨테이너 규격은 33 Feet였으나. 이후 1965년 컨테이너 규격을 35 Feet로 통일을 하였습니다. 35 Feet Container는 1968년 ISO의 규격 통일(20 Feet/40 Feet) 이후에도 1970년대 초까지 Sea Land에 의해 사용되었습니다. 이미 제작한 컨테이너를 일부러 폐기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컨테이너 규격 통일이 이루어진 후부터는 보다 통일성 있고, 효과적인 Intermodal 서비스가 가능해지고, 글로벌화된 컨테이너 운송이 가능해져, 전 세계 물류뿐 아니라 무역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큰 획을 긋게 되었습니다. 현재 전 세계 해운 물동량 기준 약 18%을 차지하고 있지만, 화물의 가치 기준으로 볼 때 약 73%에 해당되는 Value가 컨테이너로 움직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Sea Land는 전 세계 해운 물류의 혁명을 선도하고, 지금도 저희들이 수입된 제품의 생산지와의 가격 격차가 줄어들게 된 것은 Sea Land 컨테이너 발명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Sea Land는 1965년 처음 “컨테이너 대서양 정기선”을 운항하게 됩니다. (최초의 대양간 벌크 정기선은 1820년대 New York에서 Liverpool로 가는 대서양 노선이며, 이후 대양 간 컨테이너 정기선으로 발전하기까지 약 140년 이 걸리게 된 것입니다.)

에고, 너무 Sea Land 얘기만 했죠? 컨테이너의 발명과 그 가치에 몰입하다 보니 딱딱한 얘기만 했습니다. 하기야 컨테이너 자체가 철제라 딱딱하긴 하니까요.

데헷


참고로 요즘 컨테이너 용기 한 대의 값이 얼마인지 아십니까? 전 세계적인 컨테이너 부족과 함께 컨테이너 용기 값이 많이 인상되었습니다. 2020년 1월 40 Feet 한 대 3,300불에서 2021년 1월은 2배 가까이 인상된 6,400 불이고 그것도 없어서 못 팔 지경이라 합니다. 지금은 더 올랐겠죠? 지금도 컨테이너 수급 불균형에 따라 제작 단가가 지속 인상이 되고 있어 철강 가격까지 동시에 인상이 되는 상황입니다.

20 Feet 컨테이너의 길이가 크기가 어느 정도냐고요? 음! 이건 나름대로 예리한 질문!

데헷


1 Feet 가 사람 발 하나 크기인 30cm(정확하게는 30.48 cm) 정도이니 20 Feet는 약 6m 정도이고, 40 Feet는 약 12 m 정도 됩니다. 생각보다 길고 용량 또한 넓습니다. 단위는 “발”을 영어로 표현한 Feet(복수)를 쓰고, 가끔 단수인 Foot를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사실 20 Feet 컨테이너 한 대로 4인 가족 이삿짐을 꽉 채워 넣을 수 있으니 작은 용량은 아니죠. 저도 해운 회사에서 주재 근무를 많이 다녀 총 8번의 해외 이사를 했는데 컨테이너가 아니었으면 어떻게 짐을 실었을지 생각만 해도 암담합니다.

아! 근데 사람의 발 길이가 30cm이나 되냐고요? 글쎄요. 그때 서양 사람들은 발 넓은 사람이 많았나 봅니다. 아마도 키가 세상에서 제일 큰 네덜란드 사람들의 발을 기준으로 삼았던지!

아! 그리고 뭐든지 자기네 나라말로 고쳐 쓰는 프랑스에서는 실무에서 컨테이너 단위를 Vingt Pieds(뱅피에: 20 Feet), Quarant Pieds (꺄랑삐에:40 Feet)라고 프랑스 말로 직역을 해서 씁니다. 역시 프랑스인답죠. 우리나라도 물류인들도 국어를 너무너무 사랑해서 ‘Feet’를 우리말인 ‘발’로 고쳐 쓴다면 어떨까요?

“아! 정 대리님! 이번 주 우리 회사 스무 발 용기 여덟 대와 마흔 발 용기 여섯 대 예약 들어갑니다. 용기 단위 이하 짐도 몇 다발 있어요. 용기로 못 담는 작은짐은 부산 용기짐 작업장으로 직접 보낼 터이니, 잘 섞어 실어 주시요. 꼭 이십 발 용기에 꼭 해주시요.
그리고 다음 주에는 얼린 짐도 있으니까 좀 큰 사각 징하게 얼려버린 마흔 발 용기도 준비해 놓으시구요. 다음주에 용기 부족되면 큰일 납니다!”

어떤가요? 말해보니 나름대로 정감이 가네요.

계획대로 되고있어


자, 그럼 다시 미국의 컨테이너 운송으로 돌아가서, Malcom은 또 한번 세계 해운사에 획을 긋는 큰 모험을 합니다. 바로 Round world Service입니다. Sea Land 사외이사에서 나온 Mc Lean은 컨테이너 사업을 키워보겠다는 의지로 초대형 배를 1978년 건조를 하였습니다. Mc Lean은 자신의 두 번째 세운 선사인 US Line을 통해 Jumbo econship 4,470 Teu 12척을 대우 조선으로부터 건조를 하여 본격적인 Container 대형화를 시도를 합니다. Mc Lean 은 1980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을 틈타 유가 인상을 고려하여 Slow Steaming을 전제로 저 비용 선박을 고안을 한 것입니다. 그는 본격적으로 세계 최초로 Round world Service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의도와는 다르게 1984년 유가의 하락으로(Barrel당 10불) 유류비(Bunker C유) 절감 효과는 미미하였고, 이로 인해 회사(US Line)는 도산하여 1985년 그가 최초에 세우고 매각을 했던 Sea Land에 인수되어, 그의 꿈은 물거품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아! Malcom은 컨테이너를 발견 아니 발명할 때부터 전 세계 물류 사업의 합리화에 큰 획을 긋는 것도 모자라 1980년 초에 Round the World Service를 시도하고 Slow Steaming을 시도할 정도로 창의적으로 물류의 역사를 통째로 바꾸었던 인물입니다.
저희 같은 물류인에게 Malcom은 삼성전자로 치면 “에디슨” 같은 존재인데도 불구 Malcom은 물류인에게 조차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Malcom 이란 단어를 네이버에 검색을 하면 “자연을 품은 향기 Malcom”같은 샴푸 광고나 “세상 편한 안경 편한 안경 브랜드 Malcom, 그리고 정확한 피팅 실력” 같은 안경 광고가 먼저 나옵니다. 혹시 지금 검색해보신 분! 제 말을 믿으십시오!

지켜보고 있다


한편 회사의 매각과 함께 그의 선박들은 Sea Land에 의해 3,000 Teu급으로 downsize 되어 대서양 항로에 투입이 됩니다. 이것은 미국의 해운에 있어 상당한 타격이었지만 아직 유럽에 주도권을 넘겨 줄 만한 타격은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후발 미국 선사인 APL(American President Lines)이 나와 미국 해운 역사에 큰 획을 긋게 됩니다.
이름도 근사하죠! American President Lines! 우리나라로 따지면 당시 “대한민국 대통령 상선”이었던 것입니다. APL은 두 가지 측면에서 세계 해운의 큰 획을 그었습니다. 미국의 동서를 있는 Double Stack Train을 운영하여 대당 수송 비용을 현저히 떨어트렸습니다.
그리고 대서양 시대를 마감하고 Post Panamax(4,000 Teu 이상의 선박) 선박을 건조하여 태평양 시대의 첫 문을 열었습니다. 미국의 양대 선사인 “바다나라” 선사와 “미국 대통령” 선사는 당시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컨테이너 해운을 주도하였고, 해운의 새 역사를 썼습니다. (번역을 해보니 이름이 특이 하네요. 우리나라도 선사를 다시 만들면 좀 특이하게 “바다 이야기”, “전복 품은 해녀” 이렇게 재미있게 지어도 될듯하네요.

그랬던 이들이 지금은 도대체 왜 세상에서 사라졌을 까요? 아직은 Sea Land, APL이라는 이름이 남아 있지만 Sea Land는 미국 중남미를 운항하는 아주 조그만 Feeder 선사로 전락하고, Deep Sea Business는 유럽 선사들에 매각되어 지금은 흔적 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APL은 2004년 Singapore 선사인 NOL(Neptune Orient Lines)에 매각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미국 대통령 선사” 라는 이름이 “해왕성 동방 선사” 보다는 이름이 그럴 싸 해서 NOL과 APL 이름이 같이 쓰이게 됩니다. 이젠 이마저도 2016년 프랑스 선사인 CMA-CGM 에게 합병되면서 2021년 10월 1일부로 태평양 항로에서 더 이상 APL 이름을 사용하지 않게 되어, 맹위를 떨치던 APL 이름이 태평양 노선에서 영원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당시 APL인수 단장이었던 CMA-CGM의 Mr. Nicolas Sartini 은 필자의 한진해운 유럽 본부 재직 시절 CMA-CGM 측 Intra-Europe, 남북항로 공동운항 Counter-Part 였는데, 후에 거대 물류회사인 CEVA Logistics까지 인수하여 APL과 CEVA 사장을 거쳐 올해 초 은퇴를 하였습니다. 3화에서 말씀을 드리겠지만 미국 중심의 해운 시장이 유럽으로 넘어간 뒤, 수많은 합병 인수를 거쳐 지금의 Maersk, MSC, CMA-CGM과 같은 유럽의 공룡 선사들이 시장을 지배하게 되었죠 이는 당시 미국 정부는 장치산업/중후 장대 산업/기간산업인 해운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탓입니다. 우리나라 정부도 그런 시절이 있어 금쪽같은 해운회사를 송두리째 날려 버렸죠. 선박이 대형화되고 컨테이너의 등장으로 미 금융 업계에서는 다기간에 ROI (Return on Investment)가 나오지 않는 해운 회사에 투자를 꺼려 했기 때문입니다. 해운과 금융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미국은 컨테이너 사업의 종주국이었고 Double Stack까지 발전을 시킨 위대한 해운의 나라였지만 금융인들의 단기적 결정에 따라 미국 중심의 해운 산업이 유럽 중심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앗! 어느덧 금번 원고 분량이 다 되었네요. 원고량이 약간 오버 했습니다. 아쉬워서 어쩌나요.

어흑..


이번 꼬꼬물의 이야기는 미국의 컨테이너 역사는 현대상선 유창근 전 대표님의 강의를 많이 인용하였습니다. 물론 사전 말씀을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주에는 “21세기 전후 유럽의 근대 해운 산업의 발달”, “ Conference와 Alliance의 차이” 등등 다양한 해운 물류 얘기가 3화, 4화에 걸쳐 펼쳐지게 됩니다.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여러분 그럼 4주 뒤 아니 2주뒤에 만나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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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lo Square 최덕림 고문 Cello Square 최덕림 고문

유럽에서 13년 주재근무를 하면서
유럽의 각종 세계 해운 환경 Forum과 Conference에
한국인으로 유일하게 참가하여,
한국보다는 유럽 해운 물류계에서 알려진 글로벌 해운 전문가

  • (현) 삼성 SDS 상임고문
  • (전) 한진해운 상무
  • (전) 현대상선 상무
  • (전) 사단법인 함부르크 경제인 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