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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컬럼 물류신문 Physical Internet, 물류의 미래⑧

등록일2025-09-19

출처 : 물류신문, 한국물류연구원 2025. 09. 15

Chapter 8. 일본의 피지컬 인터넷 도입 현황과 실증 사례

십여 년 전, 당시 몬트리올의 CIRRALT(Interuniversity Research Centre on Enterprise Networks, Logistics and Transportation) 교수였던 브누아 몽트뢰유(Benoit Montreuil, 현 조지아공과대학) 교수와 동료 연구진들이 처음 제시했을 당시 매우 이상적이며 이론에 불과한 모델로 여겨 졌었던 피지컬 인터넷은, 많은 연구와 기술적 진보를 통해 점차 현실 구현 가능한 모델로 다가오고 있다. 피지컬 인터넷은 물류 분야의 혁신적인 패러다임 전환을 가져올 미래 기술로 주목받고 있지만, 아직 많은 사람들에게 생소한 개념인 것이 사실이다. 2025년 연간 시리즈로 11회에 걸쳐 싣게 되는 본 특별기획 기사를 통해 피지컬 인터넷의 핵심 개념부터 실제 적용 사례, 관련 기술들을 살펴보고 우리나라의 피지컬 인터넷 추진 현황과 전망을 알아보고자 한다. 본 특집기획 기사는 로지스올의 한국물류연구원 기고이다. <편집자 주>

1. 물류 위기의 해법으로 떠오른 일본의 피지컬 인터넷

일본은 고령화, 노동력 부족, 도심 집중화, 온실가스 감축 등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물류 시스템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면서 이에 따른 대안으로 피지컬 인터넷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특히 2024년 4월부터 본격화된 ‘물류의 2024년 문제(2024年問題)’에서 트럭 운전자의 시간 외 노동 규제로 인해 수송 능력 부족이 심화될 것으로 예측되면서 국가적 차원의 대응이 필요해졌다. 이에 따라 일본은 물류 효율화와 지속가능성을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전략으로 피지컬 인터넷(PI)에 주목하였고, 디지털 네트워크 기반의 개방형 물류 플랫폼을 통해 화물, 설비, 정보 자원을 공유·연결함으로써 물류 전반의 최적화를 도모하는 차세대 물류 패러다임의 구축을 목표로 정부주도하에서 추진되고 있다.

2. 일본 정부 주도의 PI 추진 정책

일본 국토교통성(MLIT, Ministry of Land, Infrastructure, Transport and Tourism)은 2022년부터 ‘스마트 물류 이니셔티브(Smart Logistics Initiative)’를 중심으로 PI 도입을 포함한 물류 디지털화 정책을 추진해왔다. 이 정책은 기존의 수직 계열화 된 물류 체계에서 탈피해 산업 전반에서 물류를 ‘공공재’로 인식하고 효율적으로 공유·활용하는 구조로 전환할 것을 목표로 한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2023년부터 본격적인 PI 도입을 위한 연구 및 실증 프로젝트를 공모·지원하는 한편, 민관 협력체계로서 ‘일본 피지컬인터넷 협회(JPIC)’와 ‘CLO(Chief Logistics Officer, 최고물류책임자) 협의회’를 중심으로 추진 기반을 빠르게 갖추고 있다.

(1) 민간 주도의 PI 확산 전담기구 ‘JPIC’ 출범

JPIC(Japan Physical Internet Center)는 2023년 3월 일본 국토교통성의 주도하에 민간 전문가, 물류기업, 기술기업, 학계가 공동으로 참여해 설립된 피지컬 인터넷 전문 민간 플랫폼이다. 이 협회는 피지컬 인터넷 개념을 일본 산업에 맞게 구체화하고, 기술·표준·정책 실증을 촉진하는 정보 교류와 공동 프로젝트의 중심 거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설립 초기부터 NEC, Hitachi, Panasonic, JR Freight, Nippon Express 등 대형 물류·제조기업들이 주요 회원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물류 자원의 공유, 표준 컨테이너 개발, 트럭 공차율 개선 등을 주요 안건으로 설정해 운영 중이다. JPIC는 현재 ▲PI 요소기술 실증 지원, ▲데이터 표준화 연구, ▲PI 관련 국제 동향 공유, ▲정책 제언 보고서 발간 등을 통해 민관 간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최근에는 ISO 기반 ‘물류정보 인터페이스 표준 초안’을 개발하고, 정부가 추진 중인 ‘공공 물류 플랫폼’과의 연계 시범 사업도 진행하고 있다.

(2) 정부 주도의 CLO 협의회: 최고 물류책임자의 공식 대화 채널

CLO 협의회는 국토교통성이 2021년부터 본격 가동한 ‘산업별 물류 최적화 협의체’로, 주요 업종 대기업의 물류 책임자(Chief Logistics Officer)를 정례적으로 소집하여 공동 물류 개선 과제를 논의하고, 정책과 현장을 연결하는 민관 거버넌스 조직이다. 이 협의체에는 제조, 유통, 운송업계 등 약 70여 개 기업이 참여하고 있으며, 매년 수차례 워킹그룹과 전체 회의를 통해 ▲산업 간 공동 물류 네트워크 설계, ▲수송능력 부족 대응책, ▲탄소배출 저감 방안 등을 주제로 실무적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2023년에는 CLO 협의회 주도로 공동 운송 모델 실증 14건, 혼재배송 시뮬레이션 6건, 디지털 트윈 기반 수요예측 협력 연구 등 가시적인 성과도 발표됐다. 이 중 일부는 국토교통성의 ‘스마트 물류 기술 실증 사업’과 연계되어 정부 보조금 및 제도 지원을 함께 받고 있다. (그림1)

JPIC 주관 CLO협의회 세미나 현장 (2024년 9월), 물류·공급망 관련 주제로 발표자가 무대에서 토론 중이고 청중이 경청하는 모습

(출처: 물류신문)

(3) 민관 연계 통한 구조적 대전환 시도

JPIC와 CLO 협의회는 기술·표준·운영 측면에서 민간이, 제도·플랫폼 구축 측면에서 정부가 역할을 분담하며 일본식 피지컬 인터넷 모델의 기반을 다져 나가고 있다. 이는 개별 기업 단위의 혁신을 넘어 산업 전체의 물류 최적화를 추구하는 시도로, ‘물류를 공공 인프라로 본다’는 인식 전환이 정책적으로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 국토교통성은 오는 2026년까지 PI 실증사례 30건 이상을 축적하고, 2030년까지 PI 기반 물류 시스템을 전국 단위로 확대할 계획이다. 일본의 이 같은 민관 협업 구조는 유럽이나 북미와는 또 다른 아시아형 피지컬 인터넷 전개 모델로서 주목받고 있다.

3. 일본 주요 기업들의 PI실증 사례

[사례 1] 이토엔(伊藤園) × 코카콜라 보틀러즈 재팬 공동배송 협력

일본의 대표적인 음료 제조사 伊藤園(이토엔)과 코카·콜라 보틀러즈 재팬이, 경쟁관계를 넘어 양사의 제품을 하나의 트럭으로 혼재 공동 배송하는 테스트를 진행하였다. 하나의 트럭이 양사의 물류 거점에서 순차적으로 상품을 집하하여 배송하는 방식으로, 아이치현 신죠시 지역에서의 실증 테스트를 거쳐, 2024년 8월부터는 양사간의 본격적인 협력 프로세스로 공식 운영 중이다. 일본의 차 음료시장 1위 기업인 이토엔은 지역별 영업 사원이 영업과 제품 배송을 함께 제공하는 지역 밀착형 영업 방식을 운영하고 있어 건별 배송 효율이 낮고 운송 거리가 상대적으로 길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코카콜라 보틀러스 재팬도 운송 차량의 요일별 물동량 편차에 따른 적재효율 저하로 고민하고 있어, 양사간의 협력을 통한 운송 효율화를 추진하게 되었다. 차량 1대당 적재효율이 향상되고 전체적인 주행 거리도 감소되는 효과가 확인되어, 운송 효율 향상과 CO₂ 배출량 감소를 위해 타 지역으로의 확대를 진행 중이다. (그림2)

물류 효율화를 위한 이토엔·코카콜라 공동배송 체계, 유통 경로 다이어그램과 트럭 화물 적재 장면

(출처: 물류신문)

[사례 2] 로손 × 패밀리마트 편의점 냉동·냉장 공동운송

일본의 대형 편의점 체인인 로손과 패밀리마트도 냉동 및 냉장 상품에 대한 공동 운송 실증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2020년과 2022년에 일본 편의점 업계 3사인 로손, 패밀리마트, 세븐일레븐 간 공동 납품 실증 실험을 실시한 바 있고, 이중 로손과 패밀리마트 양사는 실증 테스트를 통해 확인된 가능성과 데이터를 토대로 논의를 계속해 2024년 4월부터 도호쿠 지방의 일부 지역에서 본격적인 공동 운송을 시작했다. 두 회사의 물류 센터로부터 아이스크림과 냉동식품을 하나의 트럭에 통합 적재하여 양사의 편의점 점포로 공동 운송함으로써 트럭 대수와 CO₂ 배출량의 감소를 시현하였다. 앞서의 실증 테스트를 통해 두 회사의 물류센터 위치와 취급 제품군, 배송처 위치를 감안한 운영 효율 향상 효과를 검증한 바 있어, 경쟁기업 간의 전격적인 공동 운송이 실현될 수 있었다. 양사는 인프라적 관점에서도 안정적인 물류 네트워크를 지속 유지할 수 있다는 전략적 효익을 고려하여 향후 다른 지역으로의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라이벌이 팀을 이루어 납품을 진행하는 이 사례는 업계를 앞서가는 협업 모델로 주목받고 있다.

[사례 3] Nippon Express의 PI기반 Node 최적화 연구 및 공동수송 실증

Nippon Express는 고베대학교와 함께 강화학습 기반 AI 알고리즘(neat)과 경로 최적화 기법, 클러스터링 및 유전 알고리즘을 결합하여 물류 허브 센터(피지컬 인터넷 Node)의 최적 입지와 경로 최적화를 시도했다. 이는 트럭 운송 데이터에 기반한 피지컬 인터넷 실증 연구로, 물류 자원의 공유와 경로 최적화를 통한 효율 향상을 목표로 진행되었다. 이와 연계하여 Nippon Express는 일본 국토교통성과 공동으로 도쿄-오사카 간 육상 운송 구간에서 복수 화주 기업의 화물을 통합 수송하는 실증 테스트를 수행했다. 각 화주 기업의 화물은 Nippon Express 통합 거점으로 입고되는 시점에 컨테이너 단위로 자동 분류 및 혼합 적재되며, AI 기반 최적화 알고리즘을 통해 운송 경로 및 배송 타이밍을 조정하였다. 이 프로젝트는 혼합 적재를 통해 차량당 평균 적재율을 기존 52%에서 8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성과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림3)

물류 효율화를 위한 아사히음료·닛신푸드 공동운송, 다양한 제품이 혼합 적재된 트럭 화물칸

(출처: 물류신문)

[사례 4] 식품 대기업 5사 공동물류 JV ‘F-LINE 주식회사’ 설립

2019년 4월, 일본의 대표적 식품 기업 다섯 곳이 손을 맞잡고 새로운 물류기업 ‘F-LINE주식회사’를 설립했다. “경쟁은 상품으로, 물류는 공동으로”라는 강력한 신념 아래, 아지노모토, 하우스식품그룹, 카고메, 닛신제분 웰나, 닛신오일리오 그룹, 그리고 미즈칸까지 6개 식품 제조사가 ‘F LINE 프로젝트’라는 협의체를 구성하게 된다. 이 회사의 뿌리는 1952년 설립된 ‘산믹스(サンミックス)’와 그 후신인 ‘아지노모토 물류’로부터 시작된다. 수십 년간 식품 물류를 담당하며 쌓아온 경험을 기반으로 아지노모토, 하우스식품그룹, 카고메, 닛신제분 웰나, 닛신오일리오그룹이 공동 출자해 전국 규모의 물류 플랫폼을 세운 것으로, 공동배송을 통해 비용 절감과 효율성 확보, 그리고 환경 부담 감소의 세 가지 목표하에 JV를 출범하였다. F LINE은 2019년, 여섯 개 제조사의 상품을 공동으로 처리하는 모델센터인 후쿠오카 제1 물류센터 오픈을 통해 본격적인 식품 공동물류 체계의 운용울 개시하였다. 특히 후쿠오카센터는 6개사 제품을 통합하여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다양한 자동화 설비를 활용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박스 및 파렛트 자동 창고 시스템인 ‘유닛로드 AS/RS’와 팔레타이징 & 디팔레타이징 로봇, 캐로셀 형식의 선반 시스템 및 AGV 등 무인 운반 설비가 적용되어 입고부터 출고까지의 전 과정을 자동화 시스템과 연계하여 구축하였다. 자동화 설비와 IoT 시스템의 연계를 통해 각사별 재고의 입고와 보관, 출고까지의 과정을 효율적으로 융합하여 공동화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모델로 설계되었다. (그림4)

F-LINE 후쿠오카센터의 유닛로드 AS/RS 자동화 물류 설비, 효율적인 입출고 관리가 가능한 스마트 창고 시스템

(출처: 물류신문)

F-LINE은 현재 전국 70여 개 물류 거점과 460여 대의 전용 차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직원 수 1,800명에 달하는 거대 물류기업으로 성장했다. 콜드라이너(cold liner)와 ab 라이너로 불리는 온도대별 공동배송 네트워크를 토대로 상온부터 냉동·냉장, 정온 물류까지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 효율적인 운송과 환경 부담 경감을 동시에 실현하고 있다. 2025년 3월 결산 기준으로 F-LINE은 매출 약 8,000억 엔, 영업이익 9억 엔, 순이익 6억 엔을 기록했다. 출범 초기 안정적 수익 확보에 고전했던 것과 달리, 최근 들어 효율화와 공동배송 확대 효과가 가시화되며 실적이 개선되고 있다.

[사례 5] Sagawa Express와 Yamato의 공동 물류 허브 실험

2023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양사의 수도권 물류 거점을 통합 운영하는 실험이다. 특히 낮 시간대에는 B2B 물류, 야간에는 B2C 물류를 운영하는 구조로 분리하여 허브 운영 효율을 극대화하였다. 허브 내에서는 자동화 장비와 AI 기반 재고관리 시스템이 결합되어 피킹 오류율이 30% 이상 감소하였다.

[사례 6] Toyota의 차량 부품 피지컬 인터넷 적용

Toyota는 부품 물류 체계에 피지컬 인터넷 개념을 도입하여 공용 컨테이너와 협업 운송을 기반으로 한 ‘수평형 물류 구조’를 실증 테스트 중이다. 협력사는 Honda, Nissan 등 완성차 시장의 경쟁사 및 부품사 12개 기업으로, 부품의 집하 및 배송 시에 표준 컨테이너와 자동 이력 관리 시스템을 통해 통합 운송을 연계 실행하고, 운송 경로 최적화를 통해 차량 대수 절감과 CO₂ 배출량 감소를 검증하고 있다.

[사례 7] ANA Cargo의 공항 간 항공 화물 공동수송

전통적으로 항공 화물 처리는 항공사 단독 운영 방식이었지만, ANA는 최근 JAL 및 항공물류 스타트업들과 협력하여 국내선 항공 네트워크의 공동 운송 체계를 실험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수하물 적재 공간을 공유하고, 화물 패킹 자동화를 통해 동일 시간 내 처리 가능 화물량을 30% 확대시켰다.

4. 결론 및 시사점

일본은 정부 주도의 체계적 정책 마련과 민간 산업계의 적극적인 실증 참여를 통해 피지컬 인터넷 개념을 현실화하는 선도 국가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규제와 인프라에 의존하지 않고, 디지털 기술 기반의 민관 협업 모델을 중심으로 구조적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비록 정부의 주도로 시작되었으나, CLO협의체를 통해 다수의 민간 기업들이 피지컬 인터넷의 실현을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는 대규모의 협력체계가 구축되었다는 점도 우리에게 참고가 되는 부분이다. 이에, 우리나라도 피지컬 인터넷 LAPI는 물론, 정부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스마트 물류 정책과 다양한 민간 실증 프로젝트에 있어 일본의 사례를 면밀히 분석하고, 제도 설계 및 공공 플랫폼 구축의 방향성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일본의 사례는 단순한 기술 적용을 넘어 물류를 공공재로 인식하고 사회 전체 최적화를 지향하는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피지컬 인터넷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토대가 됨을 보여준다.